[ZOMZ] Orion-15 28mm F6.


렌즈명: Orion-15 28mm F6


발매년도: 1955년 / Kiev, Contax ver.


렌즈구성: 4군 4매

최단거리: 0.9m

필터지름: 49mm

본체무게: 64g

생산개수: 약 1,000개 미만




  리뷰란을 장식하는 첫번째 러시아 렌즈, 바로 Orion-15 28mm F6 입니다. 이 렌즈는 과거 Ryussang님으로 부터 장기간 대여를 했던 렌즈인데 결국 기다림 끝에 손에 넣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렌즈의 m39 버젼을 스크류 마운트의 축복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가격이 무색하리만치 뛰어난 렌즈입니다. Contax / Kiev 마운트용으로는 약 10년에 걸쳐 해마다 소수의 개체가 생산되었고(시리얼번호는 자고르스크 생산의 m39 마운트 6-digit 버젼과 공유) 기록에 의하면 약 1,000개 정도로 집계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베이 등에 나타나는 빈도로 예상해볼 때 이 수치는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1. 게르만-슬라브 혈통의 혼혈.


  러시아와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이 국교를 맺었던 1930년대 초는 독
·소 양국간의 기술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로 이미 러시아는 독일로부터 Topogon F6.3의 설계에 관한 기술지원을 받고 있었다. 지형측량 및 항공촬영용 렌즈의 필수조건인 주변부의 왜곡을 최소화한 설계의 렌즈는 당시 2차대전을 향해 급변해가는 세계 정세 속에 전략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렌즈였고, 다행스럽게도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의 나치독일 손에 넘어가기 직전, 렌즈개발기술을 득하는데 성공한 러시아는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항공촬영용의 Orion-1A 20cm F6.3 렌즈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후 1944년에 이르러 화각을 28mm로 변경한 현재의 Orion-15 28mm F6 기본 설계를 완성한다. 프로토타입의 외관은 특이하게도 M39 버젼이 아닌 Contax/Kiev 마운트의 버젼인데, Carl Zeiss Jena 2.8cm F8 Tessar와 거의 흡사한 것을 볼 때 예나에서 강탈해온 테사의 경통을 그대로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 몇차례의 설계 및 외관의 변화를 거쳐 Contax/Kiev마운트1964년 사진과 같은 형태의 양산형을 생산하였다. 콘탁스마운트의 개체는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진의 개체처럼 이후에 생산된 개체들도 소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Orion-15 28mm F6의 프로토타입




2. 코뮤니즘으로 재해석된 러시안 28mm


  Topogon 타입의 렌즈이지만 화각과 조리개 모두 Zeiss의 원류와 다르다. 이러한 연유로  왕왕 Russar MR-2 20mm F5.6과 함께 러시아 고유의 설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성을 고려한 토포곤의 스팩-다운 모델로 보는 것이 옳다. 당시로써 이미 28mm도 충분히 넓은 광각이었기에 굳이 렌즈의 곡률이 크고 두께가 얇아 제조수율이 낮은 Topogon 25mm F4을 카피하여 생산하기보다 렌즈의 두께를 늘리고 곡률을 줄여 제조단가와 시간을 낮추는, 지극히 코뮤니즘적이면서도 획기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게르만 기술자들이 Jena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4장의 렌즈를 깎고 있을 때, 자고르스크의 광학공장에서 주말의 보드카 숙취가 가시지 않은 채 출근한 근로자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깎아 오리온을 조립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당장 이베이에서 두 렌즈를 검색해보면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옳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3. 오드아이를 가진 베이비 토포곤.


  Contax iia 바디에 물려 놓은 
Orion-15 28mm F6 렌즈를 언뜻보면 마치 작은 토포곤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경통 깊은 곳에 자리잡은 렌즈는 내부와 외부의 코팅 컬러가 청색과 황색으로 빛을 받으면 묘하게 두 컬러가 교차되어 인상적이다. 이런 컬러의 코팅은 prominent nokton 50mm f1.5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의 멀티코팅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스크류마운트 버젼은 컬러가 청보라빛으로 공장과 생산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 경통은 매우 가벼운 소재로 무게는 64g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으로 마감과 완성도는 Jupiter-12와 같은 다른 러시아제 렌즈보다 뛰어나 만족스럽다. 초점링의 필터 나사산 부분도 스크류마운트 버젼과 달리 매우 얇아 Zeiss Topogon을 연상케 한다. 렌즈 알의 위치가 바디 안쪽으로 들어가보일 만큼 깊어 경통 내측이 후드 역할을 한다.

  

  경통에는 Made in U.S.S.R 각인이 새겨지 있고, 거리계눈금은 미터로 표기되어있어 목측에 편리하다. 러시아제 렌즈들은 세월이 지나면 떡처럼 엉겨붙는 그리스를 사용하여 대부분 초점링과 조리개링이 뻑뻑한 경우가 많으며, 조리개링은 다른 토포곤 타입 렌즈와 같이 최대개방에서 이미 1.5 스탑이 조여진 형태를 하고 있다. 분해 후 조작을 통해 개방시 f3.5 근방까지 조리개를 모두 열 수 있지만 이럴 경우 화면 중앙부 외의 부분은 광량저하와 함께 해상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개조해서 열지 않는 것이 좋다.







4. 세련되고 신선한 컬러감의 묘사력.

  

  남자를 보려면 모스크바에 가고 여자를 보려면 쌩 빼째르부르그(레닌그라드!)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는 양쪽 다 멋지고 아름다웠기에 크게 동의하진 못했지만, 각 도시의 건축물에 이를 적용해본다면 제법 그럴듯한 말이다. MR-2 20mm F5.6 Russar가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맛의 웅장한 모스크바를 표현하기 적합하다면, Orion-15는 좀 더 유럽적이고 선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구성된 빼째르부르크의 세련된 쇼핑 스트리트를 걷는 느낌이다. 컬러감은 시원하고 주변부의 광량저하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적의 조리개는 f11~f16 사이로 f16에서는 중앙부에서 회절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나 최외곽까지 선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한다면 f16까지 조여 촬영하는 것이 좋다. 토포곤 타입답게 왜곡에 대한 컨트롤이 매우 뛰어나 핀 쿠션이나 배럴 디스토션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5. 바디와의 매칭.

  이 렌즈는 반짝거리고 요철과 라인 등의 장식적 요소가 많은 Contax iia, iiia 등의 바디에 물려 놓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 특히 거리계 각인이 표기된 경통의 크롬부와 초점링의 요철은 콘탁스 바디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느껴진다. 렌즈 자체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Contax RF에 비해 바디가 약간 크고 심플한 라인을 가진 Nikon RF에 마운트하면 작고 특별한 디테일 요소가 없는 렌즈가 더욱 왜소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부 동독, 러시아 광각계열 렌즈와 같이 Nikon SP 2005 복각 바디와 Nikon S3 2000 복각 바디에는 마운트가 되지 않거나 바디의 전면 플레이트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는 오리지널 바디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로 복각 바디들의 블랙페인트나 도금이 오리지널에 비해 미세하게 두꺼운데, 동독제 렌즈를 카피한 러시아 렌즈들은 바디와 마운트 되는 부분이 다소 두껍게 설계되어 전면 플레이트를 긁게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6. 마치며.


Nikon SP BP Late(Titanium shutter) & Topogon Type lenses.


  유럽과 유라시아 대륙의 혼혈로 태어난 오드아이의 Orion-15 28mm F6 는 희귀한 편이라 Nikon/Contax 마운트의 물건으로 구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렌즈이긴 하다. 스크류 마운트 버젼의 것은 구하기도 쉬울 뿐더라 심지어 거리계 연동도 된다. 게다가 니콘, 콘탁스 베이요넷 마운트 가격의 1/3 이면 구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ZOMZ에서 제조되어 코팅의 컬러와 마감 상태, 팬케이크 형태의 디자인에서 오는 특별함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라 할 수 있는 Orion-15는 F6의 최대개방 조리개의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사용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왜곡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과 날카로운 묘사, 진하고 청명한 색감은 토포곤 타입의 렌즈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특징이며 이를 Zeiss Topogon 25mm f4, W-Nikkor 2.5cm F4의 1/5 가격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오늘 밤은 즈고르스크 공장의 노동자들을 위한 건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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