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변함없이 사진생활 잘하고 계신가요? 저는 유부남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줄어든 개인시간 덕분에 무려 10 개월 동안 리뷰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ㅋㅋ 그래서 정말 간만에, 새해를 기념하여 베일에 쌓인 Zeiss Topogon 25mm F4 에 대해서 리뷰를 작성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W-Nikkor C 2.5cm F4의 아버지 뻘 되는 전설적인 렌즈이기 때문에 이 렌즈를 구하기 전까지 꼭 써보고 싶은 렌즈 1, 2위를 다툴 만큼 궁금했던 렌즈였습니다. (이제 몇개 안남았네요 ㅋㅋ)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토포곤에 대한 리뷰를 들어가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Zeiss Topogon 25mm F4의 뿌리는 1933년 독일에서 시작됩니다. Topogon은 Metrogon이라는 항공촬영용 렌즈에서 유래하였으며 Robert Richter 박사에 의해 처음 설계 되었습니다. 이 Metrogon은 1952년 Aviogon으로 교체되기까지 항공촬영용 렌즈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Topogon 타입은 렌즈의 대칭형 설계에서 오는 극도로 적은 왜곡과 높은 해상력 덕분에 군의 항공촬영분야와 첩보수집을 위한 스파이용 렌즈로 두각을 나타내며 2차대전기간 동안 개발의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전후에는 Zeiss Jena에서 이 Topogon 디자인을 적용하여 최초의 상업용135 포맷 초광각 렌즈로 개발하게 되는데 이 렌즈가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Zeiss Topogon 25mm F4 입니다.
2. 렌즈의 설계.
렌즈는 4군 4매의 구성으로 설계 되어있습니다. Topogon의 선조격 렌즈인 Hypergon(1900, Goertz)은 대칭형 볼록렌즈 2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더블가우스타입의 대칭형 2군 2매의 설계는 왜곡과 상면만곡에 아주 강하며 배율 색수차 역시 현저히 작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Topogon은 여기에 렌즈 2개를 더함으로써 Hypergon 설계상의 한계인 축상색수차와 구면수차를 보정하게 됩니다 . 이를 통해 비로소 Topogon 타입은 대칭형 설계의 장점을 모두 갖춘 렌즈로 탄생하게 됩니다.
3. 렌즈의 조작 및 외형적 특성. 렌즈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꽤 크다' 였습니다. 거리계 연동기구도 없고 렌즈알 자체도 작은 편 치고는 초점링 부분이 좀 크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동생격인 W-Nikkor C 2.5cm F4 가 워낙 컴팩트 하기 때문일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이 렌즈는 목측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일반적인 광각렌즈와 달리 렌즈탈착레버가 없고 초점링 뒷 부분에 Los <-> Fest 라는 글자와 함께 체결링이 존재 합니다. 말 그대로 바디와 결합시 체결링을 돌려 잠그는 방식으로 렌즈를 마운트 합니다.
렌즈알은 특징적인 Topogon 타입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대물렌즈와 대안렌즈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반구형의 렌즈알을 보고 있으면 마치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 같기도 하고 유리구슬을 박아 놓은 것 같기도 하여 자꾸 들여다 보게 됩니다. 실제로 곡률이 심하고 렌즈가 얇아 제작은 물론 조립에도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록에 의하면 1950년 부터 1953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생산되었지만 일부는 1957년 까지도 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리얼 4백만번대 이후의 후기형은 붉은 색의 T 각인이 없는 개체도 있습니다.
4. 렌즈의 성능 및 광학적 특성.
Zeiss Topogon 25mm F4는 Zeiss사의 초기 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경험상으로 무코팅 렌즈와 코팅 렌즈의 딱 중간 정도 되는 코팅성능을 보여줍니다. 때때로 빛이 강한 경우 나타나는 글레어 현상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특히 최대개방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가급적이면 F5.6 이상으로 조이고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곡에 있어서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각형의 프레임을 잡아 찍어보면 위 아래, 양 옆의 선이 완전하게 직선으로 뻗습니다.
컬러는 옅은 편 인지라 범용 포지티브로 찍을 경우 담백한 맛이 납니다. 고채도의 필름에서 F8-11 정도 조이면 비로소 묵직한 컨트라스트와 색감이 올라옵니다. 개인적으로 E100VS와의 궁합이 아주 뛰어나다고 판단되어 신혼여행 때 이 조합으로 들고 갔습니다. : ) 주변부 광량저하는 Topogon 타입의 설계상 한계점을 가지는데 비교적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해상력은 가는 선까지 날카롭게 표현하지만 초기 코팅의 한계로 디테일이 살짝 옅어보이므로 저는 후보정에서 암부쪽 커브를 좀 더 주고 있습니다.
Nikon SP/E100VS (F11,1/125)
Nikon SP/E100VS (F11,1/60)
Nikon SP/E100VS (F11,1/125)
Nikon SP/E100VS (F11,1/125)
Nikon SP/E100VS (F8,1/125)
Nikon SP/E100VS (F8,1/125)
Nikon SP/E100VS (F4,1/8)
Nikon SP/E100S (F11,1/125)
Nikon SP/E100VS (F8,1/125)
5. 바디와의 매칭.
Nikon RF, Contax RF용 광각렌즈를 통틀어 가장 경통이 큰 렌즈이기 때문에 바디에 물려 놓으면 꽤 독특한 느낌의 카메라로 변신하게 됩니다. 옆에서 보면 넙적한 몸통이 얼핏 왕관을 씌워놓은듯한 생김새 입니다. 크롬도금 처리되지 않은 다소 거친듯한 무광택의 경통에는 옛 동독의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교환식 렌즈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렌즈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카메라의 모습에서 만족감을 얻곤 하는데, Zeiss Topogon 25mm F4에서는 바로 이런 익숙하지 않음으로 부터 기인하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경통의 은색이 차지하는 부분이 검은색에 비해 적기 때문에 이 렌즈는 블랙바디와 실버바디 어디서나 훌륭한 매칭을 보여줍니다.
Nikon SP 2005 / Zeiss Topogon 25mm F4
Nikon SP / Zeiss Topogon 25mm F4
6. 마치며.
신년맞이 리뷰가 드디어 끝나갑니다. 실제로 뭐 그리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자료 찾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네요;;; 사실 이 렌즈를 접하기 전 까지는 국내는 물론 해외사이트에서 조차 작례를 찾아보기가 상당히 어려웠었습니다. RF 카메라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무왜곡의 렌즈라는 장점과 완벽한 대칭형의 렌즈 4매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설계, 실물은 물론 작례조차 찾기 힘들만큼 레어하다는 점들이 어떻게든 베일에 쌓인 토포곤을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사용기를 완성하고 말았네요 ^^;;
총평을 하자면 무코팅 렌즈와 코팅렌즈의 과도기에 발매되었던, 올드렌즈의 향수를 지닌 노련미 넘치는 렌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방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나 고채도의 필름, F5.6 이상의 조리개 하에서 비로소 수차의 감소와 함께 렌즈가 가진 진가를 발휘하는 듯 합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설계구조의 렌즈라 더욱 특별한 Zeiss Topogon 25mm F4, 이 렌즈에 대해서 궁금하셨던 분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었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